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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5 

 차가운 도시의 입김은 어두운 밤, 도시를 덮어줄 밤안개가 됐다. 지나간 시간들이 영겁의 후회와 상실감으로 얼룩진 것이었다면 나는 훗날 이 날을 회상할 때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희망이라는 미명 아래 기다림을 통한 시간의 층위를 우리가 '추억'으로서 회상한다면 나로서는 도시를 덮은 밤안개만이 떠오를 듯 싶다. 조용한 이 도시가 낯설어지는 시간이면 종종 도심을 벗어나 걷곤 했다. 도시를 떠돌던 소음이 강을 따라 잠잠히 흩어지는 모습에 위안을 삼았다. 그것이 마치 내 상념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렴.

 이 세상에는 빛나는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이상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그 빛에 가리워진, 눈에 띄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을 함께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위로가 필요한 발걸음은 서로를 재촉했고 밤하늘의 별빛은 그 걸음걸음 마다 비추었다. 

 

 종종 그 모습을 구경하면서 카페에 앉아 있곤 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둔 채 글씨와 씨름하거나 멍하니 딴생각을 흘리고 있다 보면 어느새 커피는 온기를 잃은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식은 커피가 사람들이 떠나간 발걸음의 잔상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후회는 없다. 다만 두려움이 매우 큰데 경험과 시행착오에서 비롯된 감정의 스펙트럼이 반드시 작가로서의 역량과 결부되지 않는다는 것을 해가 바뀔 때 마다 조금씩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밤안개가 아무리 짙을 지언정 하늘에 수놓은 별빛을 완전히 가리울 수는 없을 것이니. 결국 자조적 합리화만이 밤거리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밤안개에서는 강이 흘리고 간 눈물 냄새가 난다. 강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다. 눈물은 안개처럼 형태를 지우고 감정만을 남긴다. 

-Saint-Germain-des- Prés, Cafe de Flore., Paris

2018.2.22

 "우리가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마실 때마다 지구 반대편 가자지구에서는 플라스틱 폭탄조끼가 한 벌 씩 만들어진다니까요. 세이렌의 미소 뒤에 숨은 붉은 폭력의 잔영을 외면해선 안돼요."

 아직 아메리카노 한 잔이 사천원을 넘지 않았을 무렵의 오후, 아니 어쩌면 조금 이른 저녁. 점심 시간에는 오천원 짜리 지폐 한 장이 만원 짜리 지폐보다 효용가치가 높다는 이유로 제 아무리 비싸다비싸다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점심 값에는 아슬아슬하게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희미하게나마 속물적 안도감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당찬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스스로 구축해 온 사고의 범주가 표현의 방식을 견인할 것이라는 확신.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계절이 바뀌었으나 미처 시기를 놓쳐 잔가지로부터 분리되지 못해 시들어버린 낙엽처럼 가볍고 맥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 오후의 지루한 햇살이 내리쬐는 남국의 열기 속에서 흩날리는 먼지 무리를 보았다.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모든 것들의 끝은 저렇게 흩날리는 것일까. 그 먼지들은 이런 생각이 가당찮다는듯 더욱 열심히 공기와 섞였다. 창틀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은 먼지가 만들어 낸 물결 속에서 넘실거렸다. 잠시나마 '감상'의 대상이 되었던 그 먼지들은 '미세'라는 단어가 붙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뒤에 '주의보'라는 단어가 추가로 붙기 전까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무가치의 온상이었다. 먼지가 되지 못한 채 흔들리는 낙엽과 마치 낙엽처럼 무리지어 흩날리던 먼지들.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당찬 목소리와 함께 그 동안 움켜쥐고 있었던 '확신'의 가치가 한낮의 '먼지'의 가치와 등가물이 되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세이렌의 미소였다.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인식되고자 일부러 비대칭으로 디자인 되었다는 요정의 얼굴을...아니, 정확하게는 세이렌의 미소를 바라 보며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 그 대화가 그리웠다. 많은 것이 결여된 상황 속에 놓인 이후 그것이 비록 나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을 감안 할지라도 감내 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생소한 진부, 부질없는 필연, 자유로운 강박. 그 모든 것으로부터. 

 확신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백만이 남았다. 공백이란 비워진 후 무언가를 새로이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희망적인 단어이지만, 동시에 그 공간의 넓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세이렌의 미소는 그런 점에서 아비투스적인가. 그것은 가능한 논리인가. 내가 기억하는 수 많은 대화들은 분명 낙엽이나 먼지처럼 맥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상념이 깃든 밤을 후회하고 또 후회해도 돌아 오는건 길고 긴 시간 속의 침묵 뿐이다.

-2월, 서울

2018.3.29

 

 쏟아내야 할 말들은 고인 물과 함께 증발시키고, 담아내야 할 말들은 엉켜 버린 카세트 테잎처럼 흐트러뜨리는 날들. 행위의 결과만큼이나 되삼켜야 할 무지함의 반발이 나로 하여금 자꾸만 외부자로서 배회하게 한다. 

어린 시절 집 앞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어느새 머리 위에 무리지어 날아다니던 하루살이 무리가 보이곤 했다. 인간의 자각신경으로는 도저히 그 움직임의 궤적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날아다니던 날벌레들. 아이들의 생기발랄함이 만들어낸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공중에서 몸을 섞던 날벌레들은 너무도 뻔한 이름 탓에 그 존재조차 흙먼지만큼이나 가벼운 것으로 여기곤 했다. 이름이야 붙이기 나름이며 이름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성명학이나 사주학따위는 모르던 시절의 우리들이었지만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름 앞에 세워진 공고한 선입견은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하루살이.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일주일에서 최대 2주까지 생존할 수 있다. 입이 퇴화하여 먹이를 섭취할 수 없고 부화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인 종족번식 본능에 따라 짝짓기 상대를 찾아 움직이는 이 날벌레들은 아이들이 장난으로 휘젓는 손가락들 사이에 걸리거나 가로등 옆 거미줄에 걸려 최후를 맞이하곤 했다. 날벌레들의 일생은 그토록 느슨한 투쟁을 하듯 생과 죽음 사이에서 떠돌았던 것일까. 존재하는 모든 만물의 끝은 공즉시색이라는데, 이 또한 농담일까. 저녁노을이 짙어질수록 거미줄에 걸리는 하루살이의 날갯짓 또한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 

 지난 3월 8일 서강대 앞 북카페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었다. <'자기다움'에 대한 강연>이라는 소주제로 열린 세미나에는 나를 포함한 스무명 남짓의 비슷한 또래들로 채워졌는데 대다수가 30대였다. 그들 틈에 앉아 있다 보니 문득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하루살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벌어지는 무분별한 사건들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걸맞는 사건들을 추합하고 갈무리함으로서 각자 현실의 궤적을 그리곤 한다. 각자의 궤적 앞에는 야망보다는 당장 오늘 할 일에 최선을 다할 것과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는데에는 내 마음을 어지럽혔던 수 많은 궤적들, 그 궤적이 남긴 상흔을 지우는 과정을 견뎌야 했다. 이 과정은 마치 일주일간 충실한 투쟁을 하는 하루살이들처럼 나역시도 7일간의 생과 죽음을 순환하는 것 같다고, 그렇게 느꼈다. 월요일에 눈을 뜨고 주말 저녁 눈을 감는. 다시 눈을 뜨면 월요일이고 주말이 되어야 비로소 눈을 감을 수 있는. 이 지긋지긋한 삶의 궤적으로부터 독립하려면 당연히 치루어야 할 댓가에 불과한 것이라고. 벌써 셀 수 없이 많은 합리화를 해왔지만 이번에도 역시 한번 더 해본다. 어차피 합리화라는 것, 선입견이라는 것도 현실 속에서 받은 각자의 상흔을 보듬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응당 필요한 것 일 테니. 

 프리랜서. 앞으로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지겠다. 무얼 먹고 살거냐는 질문보다는 한결 나은 편일까. 신진 작가 혹은 젊은 작가로서 공인받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34세 전후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4년 안에 데뷔를 하고 대학원과정까지 마쳐야 한다는 결론이다. 

2018.4.4 

  1.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으며 그러한 분절된 틈으로 인해 삐걱거리는 느낌은 기실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찬란한 위로 따위는 기대해서는 안될 심미적 주체성을 지닌 여러 표상들의 난립 덕분에 '나'라는 존재는 오늘 하루의 삶을 조금 더 유예했다. 감사해야 한다. 그렇기에 받아들여야 한다. 유쾌한 사람들과 대면하기 위해 스스로 포기해야 했던 가면의 색이 어느덧 바래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내면의 채도 또한 흐릿해 졌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2-1. 익숙한 슬픔이라는 주제로 노트 한 쪽을 채웠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보도블럭 위에 떨어진 담뱃갑에 인쇄된 '경고 이미지'를 본 것에 대한 감상으로 서두를 연다. 담뱃갑은 슬픔이나 고통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드러내는 인식론적 환원의 매개였다. 담뱃갑에 인쇄된 썪어들어간 폐와 장기들의 이미지들은 반복되고 확대-재생산됨에 따라 그 자체로 가상의 도착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고통, 충격, 슬픔의 일상화와 그로 인한 익숙함은 반복된 노출과 습관화된 반응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며 단지 현실과 유리되어 나란히 병치된 가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미지(가상)는 실재 현실과는 다른 법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담뱃갑의 경고이미지나 문구들을 본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흡연율은 여전히 완만한 그래프의 굴곡을 보여주며 가상과 현실의 병치 사이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익숙한 슬픔'은 그런 이유로 보편타당한 감정으로서 공유된다.

  2-2. 익숙한 슬픔의 두 번째 체험은 책장 어딘가에 깊숙히 파묻혀 있던 중학교 졸업 앨범을 '발굴'했을 때였다. 지난 십수년간 먼지처럼 쌓인 시간의 무게는 과거의 기억을 보존한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단단히 매몰돼 있었다. 학교 앞 도로 위의 자동차 소음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학생들의 활기, 볕이 피어올라 만들어내는 아지랑이의 기억이 모두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발굴을 마치고 몰개성적인 교복만큼이나 '공교육의 무결성'을 증명하듯 고루하기 짝이 없던 졸업앨범의 굵은 진명조체를 담담히 넘겼다. 그러나 곧 더이상 담담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다음 목도했던 것은 페이지마다 알알이 '박제'되어 평행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기억의 편모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정면을 응시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얼굴들과 교차되는 것이 삶에 남긴 피동적 흔적들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서둘러 앨범을 덮어버렸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못할 독백이었을까. 자전적 수필의 마지막 맺은말이었을까. 하늘이 어두워지고 밝아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이 졸업앨범 속 아이들의 얼굴은 어떻게 변했을까. 퇴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짙어지는 시간을 살아온 우리라면 각자의 삶에도 많은 영역이 짙어졌을 것이다. 동시에 흐릿해졌을 것이다. 좀 더 성숙했더라면 이처럼 익숙한 슬픔 또한 소모적인 아픔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각적인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유의 원천이 되었을까 싶은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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