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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그 당시 내 짝꿍이었던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항상 밝고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그 친구를 떠올렸다. 아직도 얼굴과 목소리가 어제처럼 생생하다.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연락이 끊겼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교회에서 다시 만났다. 여전히 쾌활했고 웃음이 넘쳤다. 밝았다. 내심 부러웠고 그런 성격을 닮고 싶었다.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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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 올려다 본 천정은 커튼색이 물들어 힘 없이 자홍빛을 띄고 있었다. 단 한번도 본래의 색을 보여주지 못한 천정의 하얀 벽지였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관념적으로 분명, 닮아 있다. 욕심이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된 섬을 형성시켰다. 결국 오년이란 시간이 결핍의 시간이라 느낀 것은 순전히 나만의 맹목적인 보상 심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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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은 희망의 계절일 것이다. 매번 그래왔듯이. 무언가로부터 간절해지도록 하는 힘이 있다. 하아얀 종이 위에 무언가를 채워 넣고 싶게 만드는, 그러한 감정의 동요. 시계 초침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오전세시사십일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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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층위가 상대에게 전달될 때 마치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의미 없는 행위인양 위장하는 것. 이 것처럼 어려운 일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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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살때 스페인에서 만났던 누나가 연락을 했다. 뜬금없이 연락해서 미안하다고했다. 뜬금없이 만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뜬금없이 연락 오는 사람들이 좋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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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잠 못드는 밤마다 찾아온다. 그 빈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언제부턴가 잠들지 못함을 두려워하게 됐다. 아마도 그 시점은 타인의 입김을 통해 나의 이름이 언급됨을 지각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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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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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은 소모적 아픔을 전제로 하며 다각적 고민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효과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는 차후의 문제다.

 

 / 손가락 끝에 박힌 굳은살을 만지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바이올린 현을 꼭꼭 누르듯 그렇게 누군가의 감정을 눌렀을 때 내 가슴 속 굳은 살이 풀려날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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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공부하는 학생 신분으로서 자의식으로부터 타자의식의 난입을 방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낸 자의식이 정신을 경직되게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 마인드컨트롤이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일정 수위를 넘어서게 되면 그 순간 창작의지의 반대선상에 자리하게 되는 것 같다.

 

 / 매번 객관적으로 형상 불명의, 그러나 주관적인 두려움과 마주하곤 한다. 어제의 두려움은 오늘과 다르지 않았다. 내일의 두려움 또한 오늘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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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가루가 된 햇빛처럼 반짝이는 먼지. 혹은 코 끝에 맴도는 비릿한 소금냄새가 나던 망각화. 잊지 못할 것이다. 생소한 진부, 부질없는 필연, 자유로운 강박. 이 모든 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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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과 관리성의 맹신으로부터 현대인의 인간관계는 점차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마음 내키는대로 바꾸는 카톡 프로필사진처럼. 이것이 괜한 착각이고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 로트레아몽(C. Lautreamont, 1846~1870).

데페이즈망에 대해 묘사한 그 어떤 수사어구보다도 빛나며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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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부터 내 주변에 수 많은 가능성들이 혼재하고 있고 나는 그 중 기정적인 단 하나의 가능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가능성이란 명확한 현상 텍스트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은유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른바 '우수한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통찰력, 제도권, 정보통일성검사 등 여러 장치들을 통해 현실로 분출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기막힌 확률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현재는 곧 실재라는 점에서 다른 가능성들과 무한한 차별성이 있다는 것도. 타자의 입장처럼 당당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의견도 그의 의식 속에서 수많은 충동에 의해 조장된다던지, 위대한 사건이나 발견은 그것을 구성하는 미세한 임의의 사건들이 운 좋게 맞아떨어져 일어난다던지 하는 나의 습관적 생각의 방식과 방향들에 대해서라면 여러 가능성들 중 선택의 주체는 오롯이 '주체'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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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사라진 자리는 곧바로 다른 감정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얀 여백인 채로 남게 된다. 그것이 여백의 미로 생각된다면 아직 다른 감정으로 채울 필요가 없는 시기이다. 그 여백이 공허함으로 다가온다면 그 시점부터, 사랑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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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적으로 변화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돌아올 수 없는 상념이 깃든 밤을 후회화고 또 후회해도 돌아오는 건 길고 긴 시간 속의 침묵 뿐이다.

 

 /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꿈을 꾸었다. 현실에서의 시간 흐름이 꿈 속에 그대로 반영된 것만 같은. 한 번 쯤은 멈추어도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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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진실이 사회 상식으론 용인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결정권은 제도와 합일화된 문화권력, 정치권력에 있을테고. 우리는 그것을 '트렌드'라 말하며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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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 않은 이상주의가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울림을 선사할 수 있음을. 그것이 단지 허공을 가를 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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