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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자유에의 구속을 거부한다면, 취업이나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조차 문턱이 높아진다는 것. 우리나라 아니, '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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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위해 나름의 행동주의 원칙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연관성 없는 단순한 폭력배의 칼질 앞에 좌 또는 우익을 각각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설쳐대는 꼴은 정말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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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낀다는 것은 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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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내적이거나 심적인 사실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변화한 것이다. 이 변화는 우리의 육체적 태도 속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외부 사람에게는 분노나 사랑의 기호만이 주어져 있다거나 이런 기호의 해석을 통해 타인을 간접적으로 파악 할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타인이 나에게 분명한 행위로서 주어져 있다고 말해야 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의미와 무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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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이며 많은 것이 결여된 환경 속에 놓인 후, 이것이 비록 나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을 감안 할지라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는 것은 몸에 좋은 쓴 약을 삼키는 것과 같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다시 읽고 있는 요즘, 과거에 쓰여진 한 권의 책이 현재, 현실, 이 순간을 반영하고 나아가 나 자신의 환경을 투영한다는 것은 일견 비극인 것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은 그나마 사회에 대한 시니피에였기에 망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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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이유 "제제"논란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표현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를 혼동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작품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작가의 손을 떠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해석은 대중의 몫으로 남겨야 하는 것이 맞고. 출판사의 역할은 작품의 판매, 유통, 마케팅이지 작품의 해석, 작가의 의도파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아이유가 과잉해석을 했고 그로 인해 대중들의 타겟팅이 아이유의 '표현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은 논점으로부터 이탈한 상태다.

이번 논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레벨이 문화 향유 단계가 아니라 여전히 문화 '소비'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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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이슬람 난민을 수용한 것이 파리 테러의 원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만큼 점차 테러의 상징성은 언론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사태의 본질로부터 이탈하고 있고...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한 범지구적 인류애의 발현이 특정 종교를 신앙으로 삼는 '인간'에 대한 혐오주의를 막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이 부분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그렇다. 본질의 판단 기준은 사유의 단계보다 분명 우선시된다.

파리 테러를 통해 유럽에서 반무슬림주의가 확산되고 이는 과격 이슬람단체의 활동영역을 공고히 강성하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 파리 테러는 그것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차별에 대항하는 가장 간편한 무기는 '혐오'의 확산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 나치가 그러했고, 남아공이 그러했으며 현재 우리나라가 그 과정 속에 있다. 어두운 터널과 비유되는 혐오주의의 확산은 해당 문화권을 흑백 좌우 논리로 점철시킨다. 특히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제노포비아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의식과 소통이 자리잡지 못한 문화권이라면 그 확산은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그러나,

애초에 유럽에서 난민들을 수용한 것은 그것이 비록 나이브한 작금의 실태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으나, 그러한 이상주의가 오늘날의 유럽을 만들어 준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상주의는 분쟁의 씨앗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지만 이 때 이상주의를 해석하는 데 있어 이슬람 문화권과 서구 문화권(*기독교 국가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간 차이가 존재했었음을 안다면 의외로 문제는 간단해진다. 시리아 해변에서 죽은 아이의 사진을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다. 그 사진을 통해 독일을 선두로 유럽의 이민자 정책이 재고되었다. 아니, 재확인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과거 유럽은 부족한 노동력을 이민자로 채우고 있었지만 시리아 내전 이후 그 성격이 바뀐것이다.

 

잠깐 파리 테러에 앞서 보다 큰 그림, 프랑스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지금 많고 많은 유럽의 도시들 중에서 왜 하필 파리가 공격 타겟이 되었는가. 여기에 지리적 특수성이 갖는 의미는 단지 상징적인 것에만 근거하지 않는다. 보다 페노메논적인 이유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프랑스는 지금 처음 이슬람 세력과 충돌한 것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이나 레콩키스타와 관련된 자료는 너무 풍부하니까 굳이 내가 쓸 필요는 없을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다. 바로 프랑스의 식민주의 정책이다. 2차대전 종전 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탈식민주의움직임이 확산될 때 유일하게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은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다. 미국과 영국의 압박 속에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했지만 이후 북아프리카까지 포기해야 할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배척하자니 인구가 너무 많고, 포용하자니 언제 급진 주의자로 변모하여 '알라후 악바르'를 외칠지 모를 불안한 이민자들을 프랑스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거기에 지리적으로 스페인, 이탈리아와 함께 지중해에 가장 쉽게 노출된 국가 중 하나라는 점도 주효했다.

 

이 때 고심 결과 프랑스가 가지고 나온 문화 코드가 바로 '똘레랑스' 다. 이민자 정책에 있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프랑스에서 목격한 현상 중 하나는 프랑스는 의외로 '똘레랑스'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명확한 똘레랑스를 표방하다 보니 모든 곳에 똘레랑스로 도배가 되어 있어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곳 조차 똘레랑스 정신으로 '니 일은 니가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샤를리 엡도 풍자 테러 사건 때에도 나는 이것을 실감했다.

파리 테러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공격 당한 대상보다 공격을 주도한 세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 부분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테러를 주도한 지하드세력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슬람 내부에서도 적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유대 자본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너무 확대 해석인것 같고... 굳이 유대 자본을 언급하지 않아도 파리라는 땅덩어리는 의외로 좁다.

약자에 대한 공격이 자행된다면 약자가 더이상 약자 취급을 받지 않도록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보호를 해주거나, 적어도 조롱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똘레랑스를 적용한 프랑스 다문화정책은 실패한 셈이다.
다문화 = 문화 융합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이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다문화다.

유럽에서 난민들을 수용한 것을 무조건 이번 파리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무리라는 것. 그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 안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여러 다양한 현상들이 놓여있다는 것만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내 안에 무언가를 붙잡아 두고 있는 이것. 손 끝으로 묶은 매듭이 풀리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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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안좋은 소식만 들려와서 기분이 먹먹한 와중에 네이버 댓글창을 훑어보다가 고구마 열개를 물 없이 삼킨 것같은 급체감까지 더해졌다. 저 먼나라 프랑스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외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상식 밖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 애닮다. 매번 방법론적인 대안과 통사론적인 어구로 포장된 사회적 잣대가 국민을 '몽매한 대중'으로 비춰지도록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경계해야 한다.

 

sns를 대충 봤는데 하룻밤 사이 프랑스 국기와 에펠탑이 또 하나의 상징 언어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프로필이나 스마트폰사진 속에 프랑스 국기가 자리잡았다. 자유와 평등, 박애정신이 이렇게 가장 확실히 우리에게 각인되었던 적이 <레미제라블>과 "68혁명" 이후로 본 적이 있었던가. 바람직한 현상이라 본다. 건강한 시민 문화의 모습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주의는 결과만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고, 그보다 앞서 행동의 주체와 행위가 시작된 지점의 간극이 얼마나 면밀히 접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리 사태에서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애국주의가 단지 사상교육이나 권력이 자임한 강제성에 묶여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sns에 등장한 프랑스 상징주의는 그 사실에 대한 올바른 표현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그에 반해서,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헌법21조를 꺼내기에도 민망한 상황이 수도없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 더 우려스러운 것은 모든 사회적 이데올로기 심지어 헤게모니조차 정치 프레임을 덧입히지 않고는 이른바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통'의 최소단위조차 확보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이라는 것이 집회와 시위, 결사의 자유 위에 놓인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교통체증과 사회적 혼란만을 야기하는 사회부적응집단이라 매도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나라가 법치주의의 토대 위에 선 국가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는 지표가 된다.

지금 한국의 현실이 보수와 진보 진영간의 땅따먹기 싸움으로 비유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보수 혹은 진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광화문 시위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묻고 싶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념 즉 국가관을 헌법이라는 저울 위에 올려 놓고 시민들로 하여금 특정 저울대 위에 올려진 무게추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만약 그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강제 구금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만약 그 명분이 있다면 그 명분의 필연은 어디에서 근거하는가. 또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가.

역사는, 그렇다.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해석으로 쓰여야 한다. 역사는 그래야 한다. 그 누구도, 어떤 집단이라도 역사를 자신들이 생각한 '정당성'에 초점을 맞춘채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역사의 파시즘이며 독재화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사유의 발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모여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이 모여 삶이 되며, 그 삶이 곧 역사라는 이름으로 쌓이는 것이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강요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 국가는, 그것이 옳다고 강변하고 있다. 특정 권력 구조가 만들어낸 획일화된 역사는 그 자체로 기울어진 저울이다. 불안정한 축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면 좌파가 되고 빨갱이가 되는 현실 안에 살고 있다. 프랑스는 '차이'와 '차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싸우지만 대한민국은 '차이'와 '차별'의 간극을 넓히기 위해 싸운다, 만약 정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좌파'가 된다. 잘못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나라를 걱정하고 목소리를 표출하면 좌파가 되고, 그들의 방향에 동조하고 침묵하면 건강하고 올바른 시민이 된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포스터 그리기를 해보았을 것이다. 포스터라는 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가장 손쉽게 '시대정신'을 세뇌시킬 수 있는 수단이다. 또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포스터 주제가 있었다.
70년대에는 반공이, 80년대에는 가족정책, 90년대에는 불조심, 환경보호가 주를 이뤘다. 
초등학교 2학년때 나도 불조심 포스터 그려서 상을 받았다. 그 시기에는 불조심에 대해 그리는 학생들이 한 반에 과반수가 넘었다. 이것이 바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은 이미 우리 교육 환경 안에 오래 전부터 뿌리 깊게 심어져 있다. 지금 이 정부는 깊게 심어진 그 뿌리를 공론화 하고, 보다 획일적인 범국가적 움직임으로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옳지 않다.

프랑스가 상생을 통해 시민문화를 꽃피웠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sns에서 펄럭이는 프랑스 국기와 에펠탑의 상징성을 단지 스마트폰 화면 안에 가두어 놓아서는 안된다. 꺼내어 생각하고, 말하고, 나누길 바란다. 지금 우리는 프랑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조건 속에 놓여 있다. 이것은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서울도 유럽의 어느 도시처럼, 꽃피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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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시위의 마지막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긴장과 흥분이 섞인 시위와 사전 신고된 방식대로 마무리 된 행진의 중반부까지 함께 했음을 기록함.

 

올해 2월. 학교 안에서 이제 조금 무언가 시야에 잡힐 무렵 학교는 나에게 졸업장을 내밀며 이제 그만 나갈때가 되었다고 했다. 재학기간 동안 앞으로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지금까지 알던 내용과는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많고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꾸준히 상기시켜준 학교였다. 안정적인 학생 신분을 조금 더 유예하고 싶었지만 제도의 규율은 그러한 나의 심정을 사회적 청년 노동문제로서, 성과주의의 엘리트경쟁에서 도태될 위험이 높은 부류로 등급화했다. 하드커버로 포장된 종이에 '학위증서'라 쓰여진 진한 궁서체를 보며 가슴 한켠이 곤궁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본 빨간 불꽃 마크가 그렇게 차가워 보인 적이 없다. 그렇게 나는 정문을 나섰다.

그래서 3월. 석사 과정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시장으로 들어...섰지만 현실은 하루에도 여러번 목적의식을 되뇌이게 만들었다. 미래를 위해 당장의 현실을 포기해야 하는 삶은 흔해빠진 '과거와 현재, 미래' 따위의 통사론적 어구로는 설명될 수 없는 수 많은 시간성과 자기이해과정의 개입, 수정을 필요로 했다. 이번 시위에 참석한 것은 그러한 이해과정의 결과다.

 

이 쯤에서 지난 1차 집회 때 얘기를 하고 싶다. 11.14 d-day에 시위대와 의경 양측의 대립 프레임은 언론의 주도 아래 가장 효과적 그리고 실질적으로 대중의 사고 흐름을 장악했다. 그 와중에 물대포와 켑사이신은 통치와 규율로부터 이 땅 위의 민주주의와 행동주의가 얼마나 쉽게 찢어질 수 있는지를 여과없이 노출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날, 그 순간 한날 한시에 평범한 시민, 노동자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시위대'라는 그물 안에 묶여 감시의 대상이 됐다. 나는 이 부분을 핵심으로 본다. 그것은 미셀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과 닮아 있다. 푸코는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감옥 판옵티콘을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국가와 시민간의 규율성의 폭력 수단으로 이론화 했다. 푸코에 의하면 국가는 권력을 행사함으로서 국가 체제를 공고히하고 시민 개개인을 통제, 감시한다. 이것이 바로 "판옵티시즘"이다. 감시당하지만 정작 감시의 주체는 보이지 않는 것. 이러한 벤담과 푸코의 이론이 오늘 대한민국 서울에서 강행된 것이다.

아, 이쯤에서 의경들의 '채증' 행위를 감시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의경들의 채증은 판옵티즘에서 언급한 '감시와 통제'의 범위 밖에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부분도 자세히 써보고 싶다.


현재 정부와 여당, 시민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분열된 주체'이다. 현 정부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키워드 중 하나이다. '라캉'의 이론을 가져와 버리면 내용이 너무 무거워지기 때문에 생략하고 간단히 예로 들자면, 우리는 흔히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자유로운 삶의 만족'을 우선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정말 여행이 '자유를 위한 도피'가 될 수 있는가? 절대,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은 현실, 즉 일상이라고 하는, 언젠가 돌아와야 할 자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떠난다는 것은 돌아온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려는 가림막을 여행이라는 장치로 대체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려는 행위를 만듦으로서 ‘왜상’을 형성한다. 현실의 모든 왜곡은 주체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은 대중들로 하여금 왜상을 현실로서 이탈시켜 인지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가 순도 51.6%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세월호 침몰 역시도 그런 점에서 여행의 예시와 닮아 있다. 세월호는 단순한 인재가 아니었다. 수면 위에 드러난 뒤집힌 세월호의 잔해는 외부 재난에 대해서 우리의 감수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지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현실은 재앙 그 자체임을 망각하고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함을 세월호는 말해 주었던 것이다.

 

이번 2차 집회는 1차 집회와 비교하여 부가적인 수사구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긍정적'이다. 명확한 텍스트의 지향성은 그것의 결과로서 촉발되는 행동주의가 단지 누군가의 표현대로 허공을 가를지언정 그 자체로 의미있는 연대의식을 형성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시위와 집회의 결사는 어떤 경우에라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당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자체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언론에서는 이번 시위에 '평화'라는 단어를 많이 붙이는데, 이번 시위가 단지 평화적 시위의 모습으로만 보여서는 안된다. 그러한 평화적 시위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내일이면 나는 다시 내 꿈과 목표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로 돌아가지만 내 의식의 흐름이 언제나, 내가 바라는 사회의 지향성과 같은 목적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시위는 나와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인 여러 수 많은 20대들을 위한 외침이 되었길 바란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미생'이 아닌 '송곳'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대보험을 위해서라면 노동력 착취와 부조리한 제도권을 감내하는 체제순응적인 '인턴사원'이 아니라 비록 비정규직 시간제 근로자일지언정 갑질에 항거하고 고개를 숙이는 대신 피켓을 높이 들어올릴 수 있는 '캐셔'들에게 감정이입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일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였던 '마르틴 니묄러'목사의 시 <나는 침묵했다(Habe ich geschwiegen)>전문을 적는다.

원제는 따로 있지만 우리에게는 위의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를 찾아 왔을 때,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마르틴 니묄러(1892~1984), <나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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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대학 학과 정원에서 인문대학의 입학정원을 줄이고 공과대학의 정원을 늘린다는 뉴스 기사. 취업시장에서 매년 인문대 졸업생은 과잉공급되고, 공과대 졸업생은 인력부족에 시달린다는 것이 그 이유.

애초에 이상하리만치 한 쪽으로 편향된 취업 시장과 그보다 심각하게 고질적인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되는게 순서인데 모든 것이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요즘 분위기 속에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요즘 한국의 취준생들 사이에서 '문송합니다' 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대략 '문과생이라 죄송합니다'의 줄임말 정도로 보면 되겠다. 보다 정확하게 풀어보자면 '취업에 불리한 인문학을 선택한 것에 대해 부모님과 나 자신에게 죄송합니다'가 된다. 구조적으로 잘못된 사회 시스템의 취약점에 대한 자조가 고스란히 드러난 유행어라고 생각한다. 고강도 학업, 그에 반해 효율은 바닥을 치는 교육의 질, 적성교육 부재, 인성교육 부재, 허술한 공교육의 틈을 파고들어 뿌리내린 사교육 기대심리. 이 모든 것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된 청춘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 결과는 2,30대 사망율 1위 자살이라는 통계청의 발표다. 통계청이 2014년에 발표한 이 통계대로라면 하루에 6명의 청춘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얘기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요즘 우리의 삶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재앙이다. 이는 우리가 손쉽게 접하는 sns에서도 이미 감지되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텍스트 중심의 sns에서 인스타그램이라는 이미지 중심의 sns로 트랜드가 이동한 것은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사진 한장으로 '보여줌'으로서 수동화되었다는 반증이다. 이미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도 텍스트의 비중은 줄어든 반면, 사진, 영상의 비중이 늘었다. 문자 데이터로 주고받았던 소통의 흐름이 중의적이고 간결해지고 있다. 시각매체는 다양한 관점을 허용할 수 있으나 '기준'은 확고해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그렇다면 왜 '문송'해야 하는가? 어째서 인문학도의 길을 선택한 것이 부모님께 죄송스러울 일이며, 사회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잉여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원인으로 지목당해야 하는가.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토양 위에 뿌리 내린 나무와 같다. 과학 역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학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과학 기술은 올바르게 발전하지 못한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인식이 바로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만이 발달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계몽주의와 미래주의, 이성주의의 발달이 인간 중심의 프레임을 통과한 이후 파시즘과 나치즘을 초래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중세 암흑기를 지배했던 신본주의에서 탈피한 결과 인간은 스스로의 자의식을 고취시키는 것 처럼 보였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면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문장으로 유명한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기계철학은 그 이유로 분명한 한계점을 갖는다. 내가 데카르트를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를 통해 배운 바가 있다면 인문학적 사고 흐름 위에 합리적인 과학 기술이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가장 모범적인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좋은 토양이 마련되어야 건강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는 나무만 빨리 자랄 수 있다면 토양은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회의 방향성과 사회 구성원의 행복은 오롯이 '사유'의 존재 유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모든 인간의 행위에는 인식론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철학'이라 부른다. 정치철학, 교육철학, 경영철학, 법철학, 예술철학 등 사회 면면에 자리 잡은 철학의 강조는 그러나 허울 뿐인 빈 껍데기에 불과한가. 메아리 없는 외침인가.

 

인문학을 등한시 하는 분위기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예전부터 익숙하게 경험해 왔기에. 다만 절망스러운 것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앞으로 최소 한 세대 이상 유지될 것이라는 데 있다. 일명 '꼰대문화'를 양산한 경직된 성과주의와  부패한 관료주의가 이 나라를 병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청춘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 이 나라는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아파트를 올릴 때, 프렌차이즈를 창업할 때 흔히 '신화창조'의 개념을 자랑스럽게 내건다. 그것이 일종의 관행으로 굳어져 버렸다. 보통 각 문화권의 신화에서는 사람이 알에서 태어나거나, 날개 달린 말이 하늘을 날고, 위기에 빠진 나라를 영웅이 나타나 구해주는 등 당대 사람들의 희망과 자부심이 녹아들어 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의 신화만큼은 예외다. 뭐든 빠르고 과격하며 분명해야 인정해주는 나라인 것이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와 대비되는 것은 한치 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불안정한 미래이다. 고층 빌딩은 해마다 높게 솟아 올라가지만 개인의 통장 잔고와 행복도는 그에 반비례 하여 떨어진다. 해마다 미분양된 아파트가 부동산 버블에 일조하지만 도심 하늘 아래 만만한 내 집 갖기도 벅차다. 정부가 주도한 기업 중심 낙수효과는 외환위기 이후 그 효력을 상실한지 오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뇌당한 대다수 국민들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모 은행 cf의 카피문구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한다.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간 자본은 사회로 환원되지 않고 그 빈자리는 가계부채로 채웠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노하지 않는다. 개인의 노오오오오력이 부족했노라, 끈기, 열정이 부족했노라 스스로에게 채찍질한다. 그 채찍마저 먹히지 않자 '힐링'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 시킨다. 우리가 '힐링'이라 부르는 것들이 실제로는 기성세대가 던져준 달콤한 '당근'에 불과함을 알고 있는가. 마르크스는 저서 <경제-철학수고>에서 노동자는 생산 자본으로부터 소외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하면 근로자가 노동을 통해 창출한 가치는 근로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에게 넘어간다는 것인데 마르크스는 이것을 '소외'의 개념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맑시즘의 특이점을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사적소유를 거부함으로서 '탈소외'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이미 실패한 혁명으로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은 그 다음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가들이 소유한 자본이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지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길러야 함을 강론한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본의 증가는 소비의 증가로 이어지며 소비가 증가하면 자연스레 저축또한 증가한다는 기본적인 경제이론을 현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자본의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이유이다.

 

더 이상 개인의 노력에서 문제를 찾아서는 안된다.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내 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강조하건대 분명. 우리는. 자격이. 있다. 충분히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던가. 성공한 1%의 소수만이 주목받고 나머지 99%의 절대다수는 성공한 1%가 올라 선 피라미드의 정상을 밟아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수많은 행복과 성공의 길을 외면한채 오로지 취업으로 청춘들의 능력을 획일화 하는 것. 애초에 성공의 기준을 '나'가 아닌 제도권이 멋대로 정해버린 것.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역량문제로 귀결시키는 것. 이와 같은 국가의 교묘한 희롱 앞에 분노하라. 분노하기에 앞서 말하라. 잘못된 것에 대하여 시정을 요구하라. 개인의 힘에 부친다면 서로 합심하여 연대하라. 20대의 잃어버린 10년을 이 후 30대의 잃어버린 10년으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어쩌면 E.H 카의 해석주의 역사관이 니힐리즘을 파생시킬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조차 이 사회에서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선량한 시민의 이상은 절대왕정시대가 저문 이후 함께 저물었다. 무조건 복종해서는 안된다. 여명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가장 절망적인 순간 유일하게 피어오르는 것은 희망의 불씨이다. 태양이 모습을 감춘 얼어붙은 이 시대를 녹여낼 수 있는 유일한  불씨는 청춘들에게 있음을 우리 스스로 자각해야 할 것이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는 기존의 사르카즘에 매몰되어서는 변하는 것은 없다. 자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할 것이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단테 <신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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