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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이입이 쉽지 않다. 개인적인 시간이나 공간의 향유가, 반드시 행위의 주체로 투영되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일종의 확률게임이다. 그렇다면 내려놓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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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중반부 . 각 도시의 중앙역에 내가 타고 온 열차가 승객들을 부려 놓을 때, 그 도시를 대변하는 소리와 냄새의 집합에 몸 안의 세포들을 적응시키는 일. 여행의 연속이다.

-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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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가장 적절한 수위는 수면 바로 아래에 누웠을 때 몸 위로 물결이 찰랑거릴 정도의 수위. 햇빛이 망막을 자극하다가도 금새 수면 아래로 잠식할 수 있을 여지를 남겨 놓는, 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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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선 버스를 타고 베를린 외곽으로 나갔다. 베를린 북동부에는 네오나치주의자들이 많다는 이야길 들었던 것 같은데 여기가 북동부인지 남서부인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린지 오래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팽창단면을 보고 싶었다. 내가 탄 버스는 시 중심부를 벗어나 전승기념탑을 휘감아 유턴을 하는가 싶더니 금새 차와 인적이 뜸한 한적한 풍경을 내 시야에 뿌렸다.

 

 / 베를린을 비롯한 구 동독권에 속한 오늘날 독일의 현대적 도시들은 꾸준한 스카이라인의 변형을 위한 철거와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나는 이러한 도시들의 변화 속에서 미처 도시가 챙기지 못한 과거의 흔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음을 보았던 것 같다. 그것들은 가히 '출몰'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도시의 숨은 틈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표현할 용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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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적인 풍경은 여행자의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편, 불가항력적으로 시선의 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수시로 진행되는 타인과의 교류가 그 틈을 메운다.

-뉘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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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이란 한편으론 비워진 후 무언가로 새롭게 채워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꽤 희망적인 단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공간의 넓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준점조차 부재한 공백은 환영받지 못한다. 감정의 공백은 다수의 경험을 간직하고자 하는 바램에 대한 끊임없는 안티테제를 형성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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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있는 일상은 지워지지 않는 스케치와 같아서 미완성 된 선의 움직임들이 빼곡하다. 연필이나 콩테, 혹은 목탄, 볼펜으로 작자적인 하루하루를 되뇌인다.

 

 / 시간성은 자기이해 과정에 개입된다지만 일상의 안락한 시간 속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수 많은 이유와 목적에 대해 한 마디쯤은 거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새벽 네시오십사분. 현시각, 여행 종결.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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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몇몇 사람들의 행로에 관하여 생각해보노라면 오히려 시간이 아주 더디게 흐른다는 것이 상기된다. 잠들었다 깨어나면 너무나 고요해서 두려워진다. 불안 혹은 불안을 가장한 분주함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은 현재 즉 미래의 미완성체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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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내야 할 말들이 고인 물처럼 증발시키고, 풀어내야 할 말들을 엉켜버린 카세트 테잎처럼 흐트러뜨리는 날들. 행위의 결과만큼 꾸역꾸역 되삼킨다. 일차원적인 생각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감정의 풍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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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네 입 안에서 베어나오던 커피향을 연상시키는 알싸름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가 난생 처음 인간의 피를 맛보던 영화 속 장면이 오버랩되던 그 날 밤, 정작

커피와 피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무언의 간극.

 

 / 그것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간극처럼 손을 빠져나갔다. 허물어뜨리겠다고 달려들었지만 주먹만 빨갛게 물들었다. 남는 건 식어버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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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자기고백을 할까? - 일종의 셀프 힐링 아닐까요. - 그럴수도 있겠네요. 마주보는 거울을 내면 세계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서 이타적 방어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구요. 결론은 우울하다로 끝맺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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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맘 속 나뭇잎을 흔들고 있던 너구리가 죽었다. 정말 지고지순한 사이였는데 다른 너구리가 빈 자릴 채워주리라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 결단이 필요한 이 때 나를 짓누르는건 비단 공기뿐만이 아닐러라. 지금 놓치고 있는건 무언가. 잡고 있는건 무언가. 내려놓은건 무언가. 공통적 감정의 관점이자 그것의 종점.

 

 / 영혼없이 침잠하는 새벽 두시. 이 고요는 어느새 얄궅게 내 손을 덮는다. 어릴 적 들었던 회중시계 소리처럼 둔탁한 감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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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잠들었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무언가를 잊고자 하는 것과 동시에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아직은 안개 속이다.

 

 / 니체. 비극의 탄생에서 인간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 모두 예술가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첫 조건이 충족되었다고하여 나머지 조건이 반드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냉철한 독일인의 사상이 파고들기엔 지금의 현실이 연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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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라는 공통된 감정의 근은 밤이 깊어질수록 강해졌다. '고민 있어요. 털어놔도 돼요?' 그 아이는 무언의 긍정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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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몽타주라는건 아주 좋은 말이다. 너무나 완벽한 무결점인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세레나데인 것이다. 수 많은 목소리와 감정의 혼란 속에서 수용되는 것은 어깨와 가슴을 잡는 당신들의 눈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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